-나무를 심는 발코니
점점 자연이 귀해지는 세상 속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연을 가까이한다. 모두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발코니를 통해 자연을 확보하는 것이다. 요즘은 반려식물 기르기 취미가 점점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모든 세대가 테라스를 가진 아파트는 어떨까. 싱가포르의 인터레이스, 캐나다의 해비타트가 그의 모범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테라스 건축물 특성상 발생되는 높은 건폐율과 용적률 손해로 인해 지어질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건축 법규의 본래 의미는 양질의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함인데, 법규 때문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친환경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원하는 주거공간과 아파트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법의 철폐와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교회라는 공간
신앙과 종교적 측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 종교에게 건물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다양하겠지만, 단순히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시간당 건물의 인구 농도를 의미할 수 있다. 종교와 신앙은 하나의 건축 건물을 만들고, 그 공간으로 성도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공간 안에서 시선이 집중된 곳에 선 지도자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 공간에서의 종교 모임이 많을수록, 그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지도자의 권력은 커진다. 과거에는 동물을 태우는 제사를 통해 종교활동을 했다. 아마도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는 유일한 것이 연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종교의 중심 활동이었던 동물을 태우는 제사 활동을 없앤 혁명적인 종교는 기독교다. 일부 제사장들만이 제사를 지내던 과거 종교 방식에서 벗어나 설교를 듣는 기독교 예배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기독교가 생기고 예배당이 지어지면서 사람들은 더 자주, 많이, 규칙적으로 모일 수 있게 됐다. 그러한 인구의 집중과 규칙적인 인구 흐름은 종교적 지도자의 권력을 향상해 주었다.. 수요예배와 철야예배 새벽기도 등 모임이 잦을수록 종교 지도자의 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접근성의 특화된 공간이 가져갈 방향성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좁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화점 혹은 주상복합 건물을 선호하게 되었다. 좁은 반경에서 다양한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이 가진 강력한 장점과 대비되는 단점은 접근성이다. 주상복합 아파트 시설과 백화점 같은 시설을 일부 지역에 제한되어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지역적인 이점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 부분을 일정 대체할 수 있는 시설들이 물론 많다. 스터디카페, 애견카페 등이 그렇다. 음료를 먹는 카페라는 시설과 하나의 활동을 묶어 제공하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공간적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특히나 교회가 많다. 도시 속 다양한 상가 건물에 위치하면서 교회라는 공간은 강력한 접근성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주상복합적 욕망을 주중의 자유로운 교회 공간을 공유 오피스, 카페, 공부방, 자습 공간으로 제공된다면 어떨까. 국가와 교회가 손을 잡고 넓게 퍼진 교회라는 접근성 좋은 공간을 복합적 공유 오피스로 복지가 제공될 수 있다면 교회가 지향하는 종교적 방향성과 지역 사람들의 공간의 대한 욕구가 모두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주는 매력
온라인 쇼핑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온라인에서는 물건과 물건을 구매하는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을 생각해 보면 어떤가. 그곳은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그 안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한다. 개인적인 공간도 있겠지만, 우리가 공유하고 매력을 느끼는 공간의 특징은 보통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한다. 사람은 함께 생활하지만 그 안에서 지독하게도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모두 외롭다는 사실을 가끔은 잊고 자신만 외롭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 이런 공간에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환경과 예쁘게 조성된 휴식처에서 잠시 앉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을 구경하고 만나고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서로에게 회복을 주는 존재다. 공간은 그런 행위를 주는 선물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사람이 많은 공간은 매력이 아닌 위험이 되었다. 이제 조금씩 코로나가 풀리면서 규제도 풀리고 있다. 규제가 풀리면서 다시 공간은 본래의 매력을 찾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우리 모두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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